물아일체 物我一體
물아일체(物我一體) : 외물(外物)과 자아, 객관과 주관 또는 물질계와 정신계가 한데 어울려 하나가 됨.
1. 고양이가 세상을 지배한다.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러브, 로봇, 데스(Love, Robot, Death)’는 옴니버스 형식의 SF 애니메이션을 모은 작품이다. 이 시리즈 중 한 회차에서는 인류 멸망 후 로봇이 신인류가 된 지구의 모습을 그린 작품이 있는데 스포일러를 미리 경고하고 곁들이자면, 작품의 결말은 결국 다음 신인류(?)는 ‘고양이’가 될 것이라고 예견하듯 끝을 맺는다. 작품 속 고양이는 인간의 행동을 모방할 뿐 아니라 이미 언어까지 모두 익혀 자신의 특기인 ‘귀여움’으로 로봇들에게 살갑게 다가갔다가 결국 본색을 드러낸다. 이게 다분히 작품 속 우습고 허황된 이야기만이 아니라면 어떨까?
강아지: 인간들은 우리에게 밥도 주고 집도 주고 내가 뭘 해도 귀여워해줘! 인간들은 ‘신(新)’ 일거야!
고양이: 인간들은 우리에게 밥도 주고 집도 주고 내가 뭘 해도 귀여워해줘! 나는 ‘신(新)’ 일거야!
고양이: 인간들은 우리에게 밥도 주고 집도 주고 내가 뭘 해도 귀여워해줘! 나는 ‘신(新)’ 일거야!
2015년, 미국의 한 데이터 연구조사에 의하면 ‘Cat(고양이)’이라는 키워드가 인터넷에서 가장 많이 검색된 검색어라고 한다. 그리고 현재까지 꾸준히 늘고 있다. 고양이는 인터넷의 ‘왕’으로 불리며 가상 세계를 군림한다. 한 때 불운과 불쾌함의 대명사가 되기도 했던 고양이가 인터넷에 등장해 세계에서 가장 흔한 ‘밈(meme: 모방 같은 비非 유전적 방법을 통해 전달된다고 여겨지는 문화의 요소, 오늘날에는 주로 유행어나 유명한 사진 혹은 짧은 동영상 등을 뜻하는 말로 통용된다.)’이 된 이유가 무엇일까? 그들을 모방하고 귀여워하고 동경하는 마음의 밑바닥에는 무엇이 있었을까? 또 이렇듯 가상현실의 톱스타가 돼 버린 고양이를 디지털 작품의 소재로 삼은 조세민 작가의 마음 속 땅에는 무엇이 심어져 있었을까? 이렇게 인터넷이라는 디지털 세상 속에서 우리가 ‘냥아일체(‘고양이와 자아가 하나가 된다’라는 뜻으로 필자가 억지로 지어낸 말)’를 지향하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
고양이 위 바퀴 위 고양이
지금 구매하기2. 소원을 말해봐
한국에는 옛날 호랑이가 담배 피던 시절이라는 속담이 있다. 아주 옛날 옛적이라는 뜻이다. 이 유명한 속담처럼 호랑이 그 자체는 친구처럼 편안한 존재이기도, 호환(虎患)이라는 말이 붙을 정도로 무서운 재난의 주인공 중 하나였다. 그런 호랑이를 닮은 고양이(사실은 호랑이보다 상위의 과에 속하지만 인간이 마음대로 정한 규칙이니….) 역시 영물임과 동시에 불행을 가져다 주는 저주의 생명체로 인식되었다. 내 마음을 꿰뚫듯 바라보는 크고 빛나는 두 눈, 악마의 뿔처럼 솟은 두 세모난 귀, 호랑이를 닮은 골격과 민첩함. 고양이는 신비스러움 그 자체이자 두려운 존재였다. 대상이 내뿜는 카리스마로 인해 두려워하면서도 닮고 싶어하는 마음은 이론적으로 풀지 않아도 누구나 공감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것을 그림으로, 더 나아가 움직이는 영상으로 표현하는 데에는 어떤 심리가 작용하는 것일까?
스위스의 저명한 정신의학자이자 이론가였던 칼 융에 따르면 인간은 자신이 인식하는 것을 상징화하고 그것을 시각예술이나 종교로 표현한다고 한다. 라스코 동굴 벽화, 알타미라 동굴 벽화 등에 그려진 움직임까지 표현된 동물들 역시 마찬가지이다. 우리가 보고 있는 것은 대부분 움직이고 있기 때문이다. 이는 영화나 영상의 역사를 연구했던 자료에서도 같은 견해를 비추고 있다. 움직임을 재현하는 것이 실제와 가장 비슷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조세민 작가 역시 작품 속 고양이에 특정한 ‘상징’을 부여했다. 자신의 작품 속 고양이의 모습을 ‘작은 안녕을 기원하는 모습’이라고 말한다. 고양이의 상징은 그의 사촌 격인 호랑이의 상징과도 연결 지어지는데, 앞서 언급했듯이 호랑이는 두려움과 동경의 대상이었기에 우리의 편이 되어 우리 가족, 우리 공동체를 지켜 주길 바라는 수호의 상징을 띄고 있다. ‘빈곤, 무서운 산짐승, 질병, 공납폭탄 등으로부터 우리를 지켜주세요’하는 상징이 있어 조선후기에는 호랑이가 그려진 민화가 인기가 많았다고 한다.
축복시전해드립니다 - 흑백 고양이와 산신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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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우리가 사는 21세기, 조세민 작가의 말처럼 지금은 거대한 재난을 막아주는 호랑이 대신에 사소한(사소해야 하는) 것들이 마음을 괴롭히는 것을 위로하는 솜털이 송송 난 귀여운 고양이가 더욱 필요한 존재일 지도 모른다. 그리고 조세민 작가가 생각하는 것을 수많은 사람들이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밈’이라는 것은 단어 그 자체에도 포함되어 있듯이 모방하고 바라는 것을 가리킨다고 볼 수 있다. 조세민 작가의 디지털 작품은 이러한 ‘밈’들에 섞여 들어가 있는 우리의 작은 욕망을 건드린다. 새처럼 자유롭고 고양이처럼 팽팽 놀아도 귀여워해줬으면. 저렇게 복슬복슬 귀여운 고양이가 내 품으로 들어와 힘든 오늘 하루를 위로해줬으면. ‘나만 고양이 없어’라는 유행어는 고양이 밈이 이러한 우리의 욕망을 담았다는 것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이렇듯 우리는 우리가 현대사회에서 바라는 것들을 상징화하고 그들을 디지털이라는 새로운 대지 위에 펼쳐 놓는다.
3. 디지털, 새로운 물아일체 세상 속에서 살아남기
‘밈(meme)’은 1976년 리처드 도킨스에 의해 만들어진 단어로 초기에는 바이러스처럼 무차별적으로 퍼지는 어떤 인류 문화 현상에 관한 의미가 깊었으나 그것이 유행어처럼 자리잡아 ‘밈’이 밈으로 퍼지게 된 때는 인터넷이 충분히 안정적으로 발달해 초고속으로 전세계 어디에나 접근할 수 있는 오늘 날이다. 특히 예상치 못한 전염병으로 인해 집 안에만 갇혀 있게 된 요즘에는 디지털 상의 밈이 발달할 수 있는 더 최적의 상황이 되었다. 칠월 칠석만 기다리며 서로를 그리던 견우, 직녀 같은 참을성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기에 사람들은 서로와 소통하기 위해 디지털 디바이스를 이용한다. 인터넷에 접속한 사람들은 소통하기 위해 더 많은 공통점을 찾고 더 빈번하게 소통한다. 디지털 세계를 통한 소통의 발달은 빠르게 이루어졌고 그 안에 존재하고 있는 엄청난 발견을 한다. 바로 디지털 세계에선 무엇이든 이룰 수 있다는 것이다.
까치와 흑백 고양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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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 속에서의 믿음은 더욱 강력하고 바람에 대한 실현은 그 어느 곳보다 절실하다. 우리는 닮고자 하는 대상을 밈으로 발생시킨다. 그 옛날 소망하는 것을 한지에 붓으로 그렸다면 지금은 디지털 그림과 영상으로, 사진의 합성으로, 짧은 동영상으로 표현하는 것이다. 고양이를 찬양하는 밈의 유행은 디지털 속 자아와 현실의 자아가 구분없이 뒤섞인 현대사회에서 휴식과 안녕을 기원하는 하나의 방법일 것이다.
밈이 의미하는 진정한 휴식과 안녕은 무엇일까? 한 때 베스트 셀러였던 ’죽고싶지만 떡볶이는 먹고싶어’라는 에세이에서처럼 사람은 아주 부정적인 상황에서도 생각보다 아주 작은 것으로 긍정적으로 변할 수 있는 가능성이 있다. 조세민 작가는 모든 것이 뒤섞인 황홀경 같은 유쾌한 그림으로 현대인들에게 작은 미소를 띄우게 만든다. 방금까지만해도 내일을 생각하기 끔찍할 지경이었지만 화면 속 고양이의 모습에 나도 모르게 미소를 짓고 가슴을 쓸어내렸다면, 그리고 스스로 아주 조금만 용기를 내 그 감정을 유지하고자 노력하게 되면 작가가 원했던 것처럼 진정한 휴식과 안녕이 그대에게 찾아올 지도 모른다. 이렇게 한발짝 두발짝 흑색으로도, 백색으로도 치우치지 않는 마음 속 고요한 회색지대를 만들어 유지한다면 줄무늬처럼 행운을 새긴 고양이는 가상을 뛰쳐나와 당신의 마음 속으로 들어가 편안히 숨을 쉴 것이다.
에디터
김주영